일탈을 꿈꾸며/구름

농구 경기장에서

나비 오디세이 2011. 1. 18. 23:16

어제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하루의 칠부능선쯤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전주 kcc 농구경기가 있는 날, 경기를 보러가자는 거였다.

쉬려했던 마음도 경기장 가자는 말에는 힘을 쓰지 못했다.

아들은 연방 웃는다. 나처럼 즐거운가보다.

날씨는 꽁꽁 얼어 붙어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딱딱한 과자처럼 보였다.

텅 빈 들판에 한번 누워 보고 싶다는, 그래서 누워 있는 나를 상상 하는데

논 가운데 까마귀 떼가 보인다. 추울텐데, 그들은 눈 위에 뭐가 보이는지 계속 부리를 가만두지 않았다.

배가 고픈게지. 우리도 배고픈 시절 먹을 게 없을 때 까마귀처럼 입을 가만두지 못하고 헛입질이라도 했지 싶다.

 

다섯 명이 탄 차 안은 조용했다. 가끔 운전하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은, 동행한 선생님 한 분이

영운이를 놀리는 소리가 침묵 깰 뿐이었다.

하지만 고요 속의 외침이 더 강렬하듯

각자 마음은 경기장에 가 있어, 그 기대감이 얼굴 가득 서려 있는 게 보였다.

 

경기장 주변은 추운 날씨를 무색하게 했다. 경기 시작 2시간 전인데 주차장은 만차.

젊은이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은 우리처럼 흥분된 얼굴이다.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 후끈 달아오른 실내체육관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3000 관중을 다 채우고 서서 경기 관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놀랐다. 오늘이 평일아냐? 얼음같은 날인데?

허나 경기장은 더웠다.

 

경기에 몰입한 선수들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가슴이 먼저 더워진다.

흔히 말하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보는 일인데, 정말 그랬다. 순간순간 달라지는 상황들을 보면서

탄성과 아쉬움과 기쁨이 교차되는 것을 들었다. 숨막히는 접전이 벌어지다가

어느 선수가 클린 슛이라도 터트리면 경기장은 떠나갈 듯했다.

한순간 모두가 하나가 된 것처럼 느껴지는 묘한 매력. 이래서 스포츠에 빠지는 것일까.^^

거기에 빠져서 소리치고 선수들과 함께 뛰는 일은 움츠렸던 세포들을 잠자고 있던 근육들을

꿈틀하게 했다.

 

태풍. 전태풍이라는 선수가 눈에 들어왔다.

긴장이라곤 없이 경기를 즐기며 자유자재 휘젓는 바람 같은 선수.

경기장을 누비는 작은 꼬마 같은 선수.

심판이 맘에 들지 않으면 항의하는 얼굴에서 강한 승부욕이 보인다. 그것은, 몰입이다. 

사자 같은 지헤와 호랑이 같은 용맹을 보이는 선수. 작지만 큰 선수.

내가 감독이라면 그런 선수 하나가 천군만마처럼 느껴질 것 같다.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본다. 내 그림자가 넓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내 그림자에 타인의 그림자를 보태 더 나은 양지를 만들고 싶게 한 경기장의 작은 악동. 큰 태풍이다.

 

독수리 한 마리 공중을 선회하는 모습이 겹쳐지면서 승리의 축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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