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을 꿈꾸며/구름

아버지

나비 오디세이 2011. 6. 5. 01:56

 아버지가 허혈성 뇌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한 지 2주째다. 아버지는 당신이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자식들에게 알리지 않으셨다.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자식들이 알았고 혼비백산 병원으로 달려 온 자식들에게 늘 웃으시던 그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다.

 정확한 병명이 나오기까지 일주일이 걸렸고 우리들이 달려갔을 때 병명을 알았는데, 아버지는 그전에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누구나 그렇듯 병원에 가서 왜, 어디가, 아픈가를 알기까지가 가장 불안하고 초조한 법인데 아버지는 그 시간을 혼자석 겪으셨을까.

한편 이해가 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왜 혼자 외롭게 병실에 계셨는지 안타까웠다. 부모 마음을 언제쯤 헤아릴 수 있을런지...부모가 되었지만

부모의 마음을 다 헤아리긴 어려운가보다.

 내년이면 팔순이신 아버지는 평생을 자식 위해 빈 터에 뼈를 심으셨다. 그 뼈가 흔들리고 부러지고 상하는 시간들이 있었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으셨다.

그런 아버지가 외로워 보인다. 생은 외로운 가지의 가지를 치며 나아가는 길이라고는 하지만 나의 아버지만은 그러지 않길 바라는 게 또 어쩔 수 없는 자식들의 마음.

인간의 외로움은 병든 흙 속에 씨를 심는 것처럼 몸을 병들게 하고 흙에 진기가 빠지게 한다. 영양분이 빠져나간 흙에서는 식물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듯 인간의 영혼에 찾아든 외로움이라는 병마는 참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가지는 외로움이고 -인간이기 때문에 외롭다고 말한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누구나 겪어야만 될 통과의례같은 성격의 정서라는 것을 알지만 그 길을 비껴가기를 바라는 것이 자식의 마음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인 것이다. 이기적인 발상이요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누군가를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그런 마음인 것을. 이렇게 우기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어리석은 것은 곧 사랑이 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사랑처럼 어리석은 것이 또 있을까 싶다. 그렇지만 그런 사랑이 때론 기적을 일으키고 불가사의한 일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무척 아끼고 사랑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공경하셨다. 부부는 아름다운 둥지에 여섯 개의 알을 품으셨고 차례로 부화하여 모두 그들만의 둥지를 틀었다. 알들이 둥지를 다 틀기도 전에 어머니는 아버지 곁을 떠나셨다. 어머니가 가실 때의 아버지의 어깨는 폐암으로 앙상해진 어머니의 팔뚝처럼 변해있었다. 누구는 가고 누구는 남는다.  같이 가다가 하나가 먼저 가게 만드는 것이 진리인 것처럼 생은 늘 그렇게 굴러간다. 인력이 닿지 않는 부분에서 우리는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기도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때 우리가 그랬고 우리 같은 처지의 사람이면 누구나 그러하였을 것이다. 아버지의 눈물의 기도를 보았다. 어머니를 향한 몸짓의 언어를 보았다. 야속하게도 아버지는 한 쪽 날개를 잃고 제대로 날 수 없었다. 당신의 추락을 보이기 싫은 아버지는 스스로 한 쪽 날개를 달았고 그 날개로 남은 생을 사실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날개에도 병이 들었고 다시 아버지는 등이 쓸쓸해보였다.

 문학에 환상성을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 룰 수 없는 일에 대한 이룸을 대신 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고 그것이 문학이 대중성을 확보하여 읽히는 모티프가 되는 것이다. 문학적 모티프가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되기를 바라는 소망. 문학신이 되어본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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