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이 지났을까. 그녀들은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멀리서 차를 몰고 달려온 친구가 주변의 친구들을 모두 모이게 했다.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어도 학창시절 친구들은 어제 만난 것처럼 스스럼없이 웃고 떠들고 박장대소 할 수 있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각양각색의 삶들이 펼쳐진다. 순수하고 열정에 몸바치던 학창시절, 그 맑고 밝은 초록과 푸르름은 중년의 여인의 미소뒤로 감추어졌다. 그리고 뭐랄까 알 수 없는 기운들이 머리위를 맴도다고 할까. 성숙의 아름다운 미. 각기 다른 삶의 질곡을 건너온 모습이 말 속에 얼굴 속에 녹아 있다. 그것은 결코 감출 수 없는 것을 알겠다.
나는 수정이와 영숙이를 여지껏 껍데기만 알고 있었다. 이제서야 조금 아는 것 같다.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이다. 친구도 그냥 만난다고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짧은 시간 많은 것을 알게 된 친구들. 깊은 의미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주고 받는 말 가운데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대화. 그것은 어쩌면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 친구들은 나에게 계속 메시지를 보냈다. 친구하자고. 그런데 나는 그 메시지를 건성으로 받아 들였다. 그것이 미안하다. 오늘을 기점으로 그녀들을 받아 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뭔가 늘 쫓기듯 먼 곳을 바라보고 살았다. 그녀들을 보지 않고.
멀리 두고 온 정을 더 그리워하느라 그랬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그녀들이 나에게 더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어리석게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전학생의 비애라할까. 그와 함께 사람을 가리는 나의 성격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나의 존재가 계곡 중간에 정체되어 있었던 것이다. 돌맹이 거두어 내고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야 했음을, 바다가 되어야 했음을 나는 몰랐다. 10대의 나이에도 20대의 나이에도.
이제 나를 끝까지 기다려준 그 친구들에게 거침없는 항해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서로의 우정을 돈독히 하는 무엇인가를 찾아야 겠다.
친구는 두 종류가 있는 것 같다.
언제나 내가 먼저 찾아야 나를 찾는 친구가 있는 반면
내가 먼저 찾지 않아도 아니 내가 전혀 연락을 하지 않아도
먼저 나를 찾고 나를 아껴주는 친구가 있다. 그런 친구의 진면목을 내 고정관념의 틀에 사로잡혀 바로 보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아무리 퍼내도 그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깊은 샘물 같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기쁜 밤이다. 오늘을 축하라도 하듯 밤 하늘엔 달도 밝다. 그 옆에 별도 축하의 메시지를 가득 담고 반짝이고 있다. 아름다운 밤이다.
3학년 1반 친구들아, 만나서 반가웠다.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