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신춘문예 당선 시 모음 2018년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모음 율가(栗家) 이소회 갓 삶은 뜨끈한 밤을 큰 칼로 딱, 갈랐을 때 거기 내가 누워있는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벌레가 처음 들어간 문, 언제나 처음은 쉽게 열리는 작은 씨방 작은 알 연한 꿈처럼 함께 자랐네 통통하니 쭈글거리며 게을러지도록 얼마나.. 생각나누기/글마당 2018.01.27
그 노인이 지은 집/ 길상호 그 노인이 지은 집 길상호 그는 황량했던 마음을 다져 그 속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먼저 집 크기에 맞춰 단단한 바탕의 주춧돌을 심고 세월에 알맞은 나이테의 소나무 기둥을 세웠다 기둥과 기둥 사이엔 휘파람으로 울던 가지들 엮어 채우고 붉게 잘 익은 황토와 잘게 썬 볏짚을 섞어 벽.. 생각나누기/글마당 2017.12.03
국수-백석 국수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 생각나누기/글마당 2017.04.18
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쓰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내 가지.. 생각나누기/글마당 2017.04.17
멧새 소리/ 백석 멧새 소리 처마 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정본 백석 시집>>중.. 생각나누기/글마당 2017.04.06
밥그릇 경전-이덕규 밥그릇 경전 이덕규 어쩌면 이렇게도 불경스런 잡념들을 싹싹 핥아서 깨끗이 비워놨을까요 볕 좋은 절집 뜨락에 가부좌 튼 개밥그릇 하나 고요히 반짝입니다 단단하게 박힌 금강(金剛)말뚝에 묶여 무심히 먼 산을 바라보다가 어슬렁 일어나 앞발로 굴리고 밟고 으르렁그르렁 물어뜯다가.. 생각나누기/글마당 2017.02.07
여승/ 백석 여승 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녯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12.19
자화상-서정주 자화상 서정주 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11.21
술도가가 있는 골목-문성해 술도가가 있는 골목 문성해 산사춘 복분자 오가피주 백세주 매실주는 물론이거니와 막걸리 한 병을 마시다가도 그 병을 들어 만든 곳을 확인하는 일 그때마다 나는 경상북도 문경의 어느 오래된 술도가 골목을 더듬더듬 헤매지도 않고 흘러들어가게 된다 산사나무 열매나 복분자 오가피..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11.14
비-김혜순 비 김혜순 하늘에서 투명한 개미들이 쏟아진다. 머리에 개미의 발톱이 박힌다 투명한 개미들이 투명한 다리로 내 몸에 구멍을 뚫는다 마구 뚫는다 그를 떠밀면 떠밀수록 그는 나를 둘러싸고 오히려 나를 결박한다 내 심장의 화면에 투명한 글자들이 새겨진다 나는 해독하지 못한다 글자..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