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정일근 제 1 신 아직은 미명이다 강진의 하늘 강진의 벌판 새벽이 당도하길 기다리며 죽로차를 달이는 치운 계절, 학연아, 남해바다를 건너 우두봉牛頭峰을 넘어오다 우우 소울음으로 몰아치는 하늬바람에 문풍지에 숨겨둔 내 귀 하나 부질없이 부질없..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10.17
도공 詩 도공 詩 천양희 어느 도공은 마음을 빚어 백자를 얻었다 마음을 빚을 때는 아궁이에 장작불 피우고 호반 위에 떠오르는 달빛을 방안까지 맞아들였다 아침저녁 물가에 앉아 물안개 보고 나무 밑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다 어느 도공은 흙을 빚어 백자를 얻었다 흙을 빚을 때는 마음자리..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10.16
자화상-천양희 자화상 천양희 조롱 속에 거울 하나 넣어놓았더니 거울에 비친 제 모양을 제 짝인 양 생이 다하도록 잘 살았다는 문조文鳥 사막 속에 오아시스 놓여 있었더니 물에 비친 모랫길을 제 길인 양 생이 다하도록 잘 걸었다는 낙타 그게 혹 내가 아니었을까 <<너무 많은 입>>, 창비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10.16
그대가 오기 전날-나희덕 그대가 오기 전날 나희덕 그동안 나에게는 열망하는 바가 얼마나 많았더냐 오랜 줄다리기, 그 줄을 내려놓고 이제 두 손을 털면 하늘마저 가까이 내려와 숨을 내쉰다 그러나 나에게는 망설이던 적이 얼마나 많았더냐 진흙탕 속을 걸어가면서도 발목 하나 빠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다가 ..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10.16
추일서정-김광균 추일서정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하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 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 사이로 공장의 지..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09.27
나의 하느님 - 김춘수 나의 하느님 김춘수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어린 순결..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09.27
한(恨)-박재삼 한(恨) 박재삼 감나무쯤 되랴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 가는 내 마음 사라으이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벋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도 생각하던 사람의 등 뒤로 벋어 가서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려질까 본데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안마당에 ..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09.27
감염-고영 감염 고영 바람은 아파서 부는 것이라고 저 헐벗은 목련나무도 아파서 목련꽃이 핀다고 엄마가 아파서 내가 아프다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 이슬에 발을 적신다 마음마저 젖는다 함께, 아프지 못해서 더욱, 미안한 몸으로 병원 잔디밭을 걷는다 잔디밭 끝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희..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09.21
적경寂境-백석 적경寂境 백석 신살구를 잘도 먹느니 눈오는 아츰 나어린 안해는 첫아들을 낳었다 인가人家 멀은 산山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즞는다 컴컴한 부엌에서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08.25
낡은 집-이용악 낡은 집 이용악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래 외양간엔 아직 초라..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