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느님 - 김춘수 나의 하느님 김춘수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어린 순결..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09.27
한(恨)-박재삼 한(恨) 박재삼 감나무쯤 되랴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 가는 내 마음 사라으이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벋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도 생각하던 사람의 등 뒤로 벋어 가서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려질까 본데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안마당에 ..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09.27
감염-고영 감염 고영 바람은 아파서 부는 것이라고 저 헐벗은 목련나무도 아파서 목련꽃이 핀다고 엄마가 아파서 내가 아프다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 이슬에 발을 적신다 마음마저 젖는다 함께, 아프지 못해서 더욱, 미안한 몸으로 병원 잔디밭을 걷는다 잔디밭 끝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희..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09.21
적경寂境-백석 적경寂境 백석 신살구를 잘도 먹느니 눈오는 아츰 나어린 안해는 첫아들을 낳었다 인가人家 멀은 산山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즞는다 컴컴한 부엌에서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08.25
낡은 집-이용악 낡은 집 이용악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래 외양간엔 아직 초라..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08.18
모닥불-백석 모닥불 백석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08.17
아버지의 등을 밀며-손택수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 속에 준비해..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08.17
[스크랩]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햇살과 다람쥐 신춘희 겨우내 굴 밖은 추워 도토리, 알 밤, 솔방울. 꼬옥 곡 쥐고 놀던 다람쥐. 굴 문 바시시 열고 봄날 햇살 따라 총총 걸어나옵니다. 부신 눈 사알 살 비비고 바라보는 앞산 봉우리엔 아직 눈이 하얀데 산토끼 노루 물마시면 개울도 건너 뛰고 장끼 까투리 어울리던 솔밭 ..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07.19
[스크랩]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햇살과 다람쥐 신춘희 겨우내 굴 밖은 추워 도토리, 알 밤, 솔방울. 꼬옥 곡 쥐고 놀던 다람쥐. 굴 문 바시시 열고 봄날 햇살 따라 총총 걸어나옵니다. 부신 눈 사알 살 비비고 바라보는 앞산 봉우리엔 아직 눈이 하얀데 산토끼 노루 물마시면 개울도 건너 뛰고 장끼 까투리 어울리던 솔밭 .. 생각나누기/글마당 2016.07.19